새로운 브로커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 분)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 분)는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다음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지은 분)이 아기 우성(박지용 분)을 찾으러 돌아오고,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두 사람은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소영은 우성을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형사 수진(배두나 분)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분)는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고 반 년째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 익명으로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어느 가족’(2018)으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영화로,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CJ EN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자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함께하는 여정을 통해 교감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뭉클한 감동을 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점차 유대감을 느끼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이들의 모습은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대안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생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을 지며 여운을 안긴다.
다만 그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선보인 작품들에 비해 깊이감은 다소 얕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작위적인 설정이나 직설적인 대사, 인물들 간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 등이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감독의 새로운 연출 방식도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눈부신 열연으로 ‘브로커’를 빛난 (왼쪽부터) 송강호‧강동원‧이지은‧이주영‧배두나. /CJ ENM
아쉬움을 상쇄하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번 작품으로 한국 영화계에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긴 송강호는 자연스럽고 새로운 브로커 인간적인 모습부터 묵직하고 깊은 내면 연기까지 완벽히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이끈다. 상현의 파트너 동수를 연기한 강동원은 현실적인 일상 연기로 편안한 얼굴을 보여주고, 형사 수진으로 분한 배두나와 이형사 역의 이주영도 제 몫을 해낸다.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건 이번 작품으로 첫 상업 영화 데뷔에 나선 이지은이다. 표정부터 손짓,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소영으로 온전히 분해, 더욱 디테일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해낸 것은 물론, 담백하고 담담한 연기로 인물의 다층적인 감정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증명한다.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보고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는 새로운 브로커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아이들을 브로커가 거래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아기와의 관계를 통해 ‘엄마가 된다’는 이야기”라며 “버려진 아이들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거나, 엄마가 낳은 것을 후회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길 잘한 거야’라고 똑바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커’는 ‘생명’에 대한 영화”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129분, 오늘(8일) 개봉.
새로운 브로커
아이를 베이비박스 앞에 두고 간 엄마 소영(이지은)이 되돌아오면서, 아이를 몰래 빼돌린 불법 입양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계획이 틀어진다. 이 둘은 소영을 설득해 아이를 더 잘 키워줄 수 있는 적임자를 찾는 여정에 동참시킨다. 여기에 보육원에서 합류한 소년 해진(임승수)까지 더해진 ‘이상한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서 낯설지 않은 모양새다. 버리는 것과 버려진 것을 둘러싼 여러 사연 속에서 는 가족이란 혼자였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그저 함께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일깨운다. 거래 현장을 덮치려는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가 이들을 뒤쫓고, 멀리 있던 인물들이 감정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주요한 재미 요소다.
캐릭터의 명암을 섬세하게 살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이 그랬듯이 역시 아이를 버리고, 심지어 빼돌려 팔려는 주인공 캐릭터들을 미워할 수 없게 그린다. 사채 빚에 시달리거나 가족에게 버려진 경험이 있는 소외된 인물들은 현실의 서늘함보다 새로운 관계가 주는 따뜻한 자장 안에서 묘사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신스틸러들이 조연으로 등장해 군데군데 눈을 사로잡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브로커 혈연 가족보다 따뜻한 연대감을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마법 같은 순간이 에도 존재하지만, 생명의 책임과 소중함에 관한 영화의 메시지는 직접적인 대사 외에는 크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으로 인정 많은 세탁소 주인이자 이상한 가족의 아빠 역을 자임하는 송강호는 낙차가 크지 않은 서사에도 끊임없이 감정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형사 역을 맡은 배두나의 연기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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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AFP PHOTO
칸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라고 알려져 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묶는다. 일부 영화평론가들은 이 분류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칸 영화제의 위상이 나머지 둘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월등하다는 것이다. 세계 수위로 인정받는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다시 상을 받았다. 5월17일 개막한 제75회 칸 영화제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에 감독상,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남우주연상(송강호)을 수여했다. 2019년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3년 만이다. 한국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의 모든 상을 받은 국가가 되었다. 3년 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 영화가 세계 수준을 따라잡았다’는 평가가 아니라, ‘할리우드와 다른 새로운 조류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1993년 영화비평을 시작해 칸 영화제 참석만 21번째인 베테랑이다. 그의 반응은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수상이 ‘겹경사’라며 자축하는 국내 언론들과 사뭇 달랐다. 전 평론가는 이번 결정이 ‘칸의 실수’라고 했다. 〈헤어질 결심〉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금종려상을 탄)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루벤 외스틀룬드 감독)가 나쁜 영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화두를 던진 영화다. 영화 만듦새를 다듬을 수는 있지만 화두를 던지는 건 아무 감독이나 할 수 없다.” 칸 영화제 현장에 모여든 세계 평론가들과 교류한 끝에 나온 결론이라고 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나온 상찬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근거 삼을 만한 지표가 있다. 1889년 창간한 명성 높은 영화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매해 칸 영화제 기간 경쟁부문 작품의 평점을 게재한다. 〈타임〉 〈르몽드〉 〈가디언〉 등 여러 매체 새로운 브로커 출신 평론가들이 여기 참여해 평균 점수를 내, 현지 취재진과 평론가들이 특히 눈여겨본다. 5월28일 이 매체에 따르면, 평론가들은 〈헤어질 결심〉에 평균 새로운 브로커 3.2점(4점 만점)을 줬다. 21개 경쟁부문 작품 중 최고점이다. 〈브로커〉는 1.9점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2.5점이었다.
평점과 수상의 상관관계 자체보다 더 주목할 것은 호평이 나온 까닭이다. 유수의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영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도 이번 칸 영화제의 결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내가 꼽은 개인적 황금종려상은 〈헤어질 결심〉”이라고 썼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에 부족한 새로움이 〈헤어질 결심〉에는 충만하다는 이유다. 5월23일 ‘박찬욱의 블랙 위도 누아르에서 탕웨이가 준 감동’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긴장감과 음모, 거대한 감정의 대립, (…) 플롯 비틀기는 매우 히치콕적이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대다수 경우와 달리 (〈헤어질 결심〉은) 모작(pastiche)이 아니다. 마치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히치콕 스타일 영화 같다.” ‘멜로·로맨스’를 표방한 영화를 어째서 이렇게 평했을까. 기사 후반부에서 브래드쇼는 이 영화의 ‘익숙한 새로움’을 좀 더 풀어 설명한다. “새로운 캐릭터와 신선한 전개가 주기적으로 관객을 때리고 균형을 잃게 한다. 극중 인물의 관계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관객은 기다려야 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평론가들로부터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작품 중 최고점인 평점 3.2점을 받았다. ⓒCJ ENM 제공
할리우드 영화에 결여된 미덕 갖췄다
박찬욱 감독은 5월24일 상영 현장에서 “길고 지루하고 구식인 영화를 환영해줘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겸양처럼 보이는 이 수식은 사실 브래드쇼가 느낀 새로움의 원천이라고, 전찬일 평론가는 새로운 브로커 말한다. 앞서 그가 언급한 ‘화두’의 의미다. “‘구식’이란 표현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이란 의미다. 〈헤어질 결심〉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가벼워지는 시대에, 질(quality)을 추구하기 위해 한번 멈춰 서서 돌아보자는 화두를 던진다. ‘영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영화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탔어야 새로운 브로커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히 ‘가장 잘 만든 영화이기에 1등상이 어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박 감독의 메시지야말로 칸 영화제의 정신과 가장 어울린다고 했다. 여타 영화제와 달리 칸은, 넷플릭스 같은 OTT에는 경쟁부문 출품을 허용하지 않는 등 영화의 전통을 고집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는 설명은 불충분하다. 박찬욱·봉준호 등 걸출한 감독이 서구권에서 주목받게 된 데에는 배경도 있다. 주로 나오는 분석은 외부 환경의 변화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새 매체가 접근성을 높였고, BTS를 비롯한 케이팝의 인기도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해외에는 영화계 안의 이슈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영화들이, 그간 영화산업을 지배해온 할리우드 영화에 결여된 미덕을 갖췄다고 말한다. 〈헤어질 결심〉의 탁월성과 별개로,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이야기다.
영국 주간지 〈옵서버〉는 지난해 6월19일 ‘새로운 할리우드:대한민국 영화는 신선하게 독창적이고 장르를 뒤흔든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 매체는 한국이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낸다고 평했다. 미적 즐거움, 감정적 매혹, 잘 쓰인 각본 등을 한국 영화의 강점으로 꼽은 〈옵서버〉는, 이와 상반되는 할리우드의 행태를 비판한다. “미국 영화산업은 수년간 독창성 부족과 뻔한 줄거리, CG 주력으로 눈에 띄는 질적 저하를 겪었다.” 프랜차이즈의 후속작이나 이전에 다뤘던 소재만 박스오피스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를 뒤쫓는 걸 넘어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는 서구권 밖에서도 나온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발리우드’라는 별칭을 얻은 인도가 한국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동명의 평론가가 운영하는 영화평론 사이트 〈바라드와즈 랑간〉에는, 2020년 4월5일 ‘한국 영화가 오늘날의 할리우드보다 20세기 할리우드에 더 가까운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국 영화들이 “20세기 미국 영화가 과거 새로운 브로커 나를 비롯한 평범한 젊은이에게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상기시킨다”라고 적었다. 기사는, 지금의 한국 영화와 1980~90년대 할리우드 영화 간 공통점으로 ‘인간의 쓰임새’를 꼽는다. “한국 영화는 (선택이든 아니든)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가 문제 삼는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인간은 “액션 장면 사이에 들어가는 충전재다”.
〈브로커〉에 출연해 제7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씨. ⓒ연합뉴스
미묘한 관계 묘사에 능한 한국 영화
분명 한국 영화는 매우 빠르게 할리우드의 새로운 브로커 노하우를 습득해왔다. 기술이나 작법뿐만 아니라 주제의식, 서사 전개 면에서도 미국 영화의 것을 흡수했다. 액션과 CG에만 치중하게 된 지금의 미국 영화보다는, 미국의 길을 모델로 삼은 성실한 수제자 한국이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가깝게 되었다는 평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길이 갈린 게 할리우드의 일방적 ‘탈선’ 때문만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사회·문화에서 형성된 별개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한국 대중문화 작품은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묘사하는 데 능하다. 주먹을 내질러도 주먹질하는 사람의 심경에 집중한다. 심지어 좀비나 자연재해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끈질기게 파고든다”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그 원천을 할리우드나 글로벌 영화 산업의 옛 모습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아시아 특유의 가족 문화’를 들었다. “서구권에 새로운 브로커 비해 여러 가족 구성원과 부대끼며 살아온 전통이 오래 유지됐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관계라는 주제를 오래 생각하게 된 계기일 수 있다.”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가 지금껏 해온 연기 또한 ‘관계’를 포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그는 본다.
박찬욱 감독은 시상식 후 “한국 관객들이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영화는 장르를 비틀고 주제를 뒤흔들었다. 상업영화와 오락영화의 벽을 허물고 각각의 강점만 담으려 했다. 그럼에도 질이 낮거나 정서를 거스르는 작품은 여지없이 퇴출됐다. ‘인간’ ‘관계’ ‘공동체’ 등 국내 관객이 선호하는 고유의 가치를 담았다. 처절한 경쟁 과정에서 이 표현은 극단까지 벼려졌다. 정서가 과하면 신파라고 비판받았고, 모자라면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담금질하던 어느 날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보다 더 할리우드 같은 새로운 보편이라고 평가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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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는 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의 배우들과 한국의 스태프들과 작업한 한국영화다. 그래서일까. 이 감독의 특유의 느린 문법은 여전하지만, 그 느린 문장들의 사이사이에 악센트를 주는 한국 영화의 문법들이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섞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조화를 이뤄냈다고도 생각하진 않기에 새로운 브로커 아쉬움이 남는다. 의 위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범작과 수작의 그 어딘가에 위치한다. 평가가 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 영화의 문제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좋은 작품들은 현사회가 한번쯤 해봐야하는 가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는 동시에 미학적 성취를 놓치지 않는다. 가령, 의 경우 스가모 아동방치사건을 주제로 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에, 현실을 스크린속에 재현하지 않는다. 는 감독의 바람을 재현할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힘든 상황에 처한 많은 아이들이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주고,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스크린으로 재현할 뿐이다. 에서도 히로카즈의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기보다는 차라리 현실을 확장하기를 선택했다. 실제 사건에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1-1. 에서 구현된 여성에게 부여되는 도덕적 잣대에 관한 실험
반면, 는 온갖 현실의 복잡한 반영체이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현실의 문제는 성에 부여되는 도덕적 잣대에 대한 것이다. 가령, 이 영화는 소영(이지은 배우)이 자신의 안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소영을 문제적 아이로 몰아간다. 이 영화가 소영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관객을 두고 하나의 실험을 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를 버리고 갔다는 설정부터, 직업도 없고, 거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사례금이라는 말에 눈빛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고아로 자라 어린시절부터 성매매를 했다는 등. 이런 설정들은 마치 소영이 문제적 아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런 소영을 몰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정말로 데려올 생각이 있기는 했냐고 묻는 상현(송강호 배우)과 왜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동수(강동원 배우), 소영의 무책임을 탓하는 한편으로 소영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도망가야하는데 애가 방해가 된거’라고 일단락하는 형사(배두나 배우) 등 영화속 인물들은 소영의 도덕심을 다그치듯이 몰아간다. 그리고 영화의 모든 상황이 소영을 다그치게 될 때, 관객 역시 인물들의 목소리에 동조하게 된다. 관객의 눈에도 소영은 기르지도 못할 것을 굳이 낳아서 아이를 유기하는 무책임한 엄마로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브로커 소영이 자신의 진심을 말하기 시작할 때, 관객은 동요하게 된다.
소영 : “그러면 지금, 낳고 나서 버리는 것이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낫다고 보시는 거에요?”
소영 : “이런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잖아. 나한테서 애를 빼앗아 가려고 하길래, 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내가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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